마음칼럼

기억해주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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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아침
댓글 0건 조회 562회 작성일 23-11-0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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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걸쳐서 아버지에게 숱한 폭언과 잦은 폭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음주로 인한 가정 폭력의 문제가 있었고, 자식들에 대한 비난과 저주, 자식들 앞에서의 어머니에 대한 무시, 비아냥, 폭행으로 저희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고는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년이 된 제가 아버지에게 어릴 적 몇몇 사건을 꺼내며 "도대체 그때 왜 그러셨냐?"라고 따지듯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저는 그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사자는 기억조차 못 하는 일로 내가 그 많은 세월을 그렇게 고통당하며 망가져야 했다고?' 그런데 잠시 후 놀랍게도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저와 같은 허탈한 마음을 토로하는 내담자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당사자는 정작 기억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제 경우를 빗대어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래요! 맞아요! 기억을 못 한다잖아요! 그에게는 그 사건이 존재하지 않아요. 실체가 없는 거라구요! 그런데 왜 내가 그에게는 존재하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것마냥 잊힌 사건들에 고통받는 세월을 쌓아가야 하나요? 더는 그가 그렇게 값어치 없이 여긴 사건들에 우리 인생을 맡기지 말아요. 우리 인생은 그가 아무일도 아니라 여기며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그 사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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